2013.08.20-12.30 제주4⋅3평화기념관 『제인 진 카이젠 영상 특별전』 Jeju April 3rd Peace Park “JANE JIN KAISEN – SPECIAL EXHIBITION”

[작가의 글] 거듭되는 항거 Reiterations of Dissent
| 제인 진 카이젠 Jane Jin Kaisen

제가 제주 4․3을 알게 된 경위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특별히 외국인들을 위해 짧은 기고를 해달라는 부탁을『4․3과 평화』잡지로 부터 부탁 받았습니다. 저는 제주 4․3에 관한 작품을 2011년에 제작했는데 그 작업을 하고 난 후 느낀 바에 대해 여러분들께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제가 작업을 시작할 때 가졌던 제 주관적인 느낌과 예술적 관점에 관해 먼저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디아스포라적인 측면, 즉 제주 4․3이라는 역사와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먼 거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제주 4․3에 접근하였습니다. 제주에 있는 제 가족은 제주 4․3과 그 앙금인 ‘구속과 공포 그리고 고통’과 같은 좀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신체적 증상과 침묵 그리고 과거나 정치에 관해 너무 자세하게 얘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좀 더 미묘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연장된 트라우마’를 통해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관련성을 느끼게 됩니다. 동시에, 저는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배울 기회가 거의 없는 북유럽에서 자랐기 때문에 제주 4․3이라는 역사에 거리감이 있을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멀리 있습니다. 제주 4․3은 이미 3세대 이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저와는 시간적으로도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주 4․3 그 자체로서 보다는 그 이후의 트라우마와 남겨진 현상에 주로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언어 장벽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역사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영어로 된 자료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거리감 때문에 2009년이 될 때 까지도 제주 4․3에 대해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전쟁과 군사주의가 한국의 여성과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제 가족이 제주에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마다 “제주에서도 4․3 때문에 여성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는데…”라고 말하면서 제주 4․3을 넌지시 알려주었습니다. 혹은 “제주에서의 대량학살에 미국도 관련되었는데…”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런 말들은 그냥 대화의 곁가지에 불과하였지만 그 말들이 궁금증을 일으켰고 마침내 4․3의 역사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제주 4․3의 광범위하고 파괴적인 면과 그 반면에 여태 잘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있다는 것에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2011년 초반, 제주를 찾은 지 7년 만에 제주 4․3에 관한 영상작업을 하기 위해 제주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제주 4․3에 관해서는 지역 영상제작자와 기자들이 만든 TV용 다큐멘터리 프로그램과 몇몇 다큐멘터리들이 있었습니다만 이 다큐멘터리들 중에서 해외 시청자들이 접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밖의 해외에서 더 광범위한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제주 4․3에 관한 영상작업을 하기로 결심했는데 그것이 디아스포라적 예술가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전 제 작업에서 늘 주변부 역사와 정치적 주제를 다루는데, 역사가 어떻게 합의되며 어떻게 집단적 기억들이 형성되는가에 관해 관심을 가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 4․3 기간에 벌어진 헤아릴 수 없는 끔찍함을 알게 되고 그 사건의 정치적 본질에 관해 언급이 금지되었을 때 나타나는 수 십 년간에 관해 배우게 되면서 저는 바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함구하라고 정부가 강력하게 압력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민들이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는 것에 또한 깊이 놀랐습니다.
하나의 영상작업으로 만드는 대신 저는 다섯 개 채널로 된 비디오 설치작업 “거듭되는 저항”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작업은 다섯 개의 비디오로 구성되었는데 제주 4․3에 대해 서로 다른 역사적 그리고 정치적 관점과 어떻게 이 사건이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관람객이 하나의 영상에 집중하게 하기 보다는 동시에 작동하면서 서로 관심을 끌려고 경합하는 이 다섯 개의 비디오 설치 작품 가운데에 관람객이 위치하도록 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주 4․3의 역사가 얼마나 논쟁적이고 복잡한지 관람객들에게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며 여전히 합의되어야 하는 아주 여러 층위의 역사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이 작품에 “거듭되는 항거”란 제목을 붙였는데, 그것은 6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제주 4․3이 역사적 정의에 대한 현재 진행형인 싸움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양측 모두 무겁게 침묵하고 있는 사건이라서 제주 4․3에 관해 말을 꺼내게 되면 즉시 정치적으로 이견을 갖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제주 4․3을 공산폭동이라고 공식적으로 말하는데에 의문을 갖는 어떤 시도도 그 즉시 남한에서의 미국의 존재에 의문을 갖는 것으로 간주되고 확고하게 반공을 기반으로 하는 남한의 국가체제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거듭되는 저항”으로, 한국전쟁과 제주 4․3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해외의 관람객들에게 역사적인 개요를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에 초점을 맞추면서 동시에 비록 지금 65년이 흘렀지만 제주 4․3의 트라우마와 그 영향이 여전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2013년은 한국전 휴전 60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한반도의 분단이 지속되고 있고 이데올로기적인 긴장이 지속되고 있기에 한국전쟁은 공식적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제주 4․3은 한국전의 전조였기에 이런 맥락에서 중요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제주 학살이 1948년에 발생하였고 그것은 한국전이 발발하기 2년 전입니다. 남한 정부와 미국 정부는 어떤 반대 세력도 진압한다는 예를 설정하고자 했습니다. 동시에 제주 4․3은 30여 년의 잔인한 식민지배가 끝나고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통일과 평화와 자치를 원했는지에 대한 역사로 민중의 역사입니다.
오늘날, 제주도는 평화의 섬으로 불리지만 많은 관광객들은 제주섬의 아름다움과 유네스코에서 정한 세계유산만을 보기 위해 제주를 찾아옵니다. 저는 외국인들이 제주 4․3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될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이 독재 권력을 민중의 권력으로 이동시키는 동력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지식은 평화를 만들고 평화를 지속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는데, 그것은 다시는 그런 잔혹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상기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인 진 카이젠은 시각 예술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에서 살며 활동하고 있다. 이 작가는 미국의 UCLA와 덴마크 왕립 미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For this magazine that you are now reading, I was asked to write a short essay, explaining how I came to know about Jeju 4.3 and what I wish to convey about the event, especially people living abroad. I will do so by sharing some after-thoughts on an artwork I completed in 2011 concerning Jeju 4.3. First, however, I will share with you some context for my subjective entry point and artistic engagement.
I approach the history of Jeju 4.3 from a Diasporic perspective, as someone who is at the same time both affiliated and distanced. I am affiliated because my family on Jeju were effected by the event and its residues through both direct repercussions in the form of imprisonment, scarcity, and pain, as well as through prolonged trauma, which often appears more subtly as bodily symptoms, silences, and fears of talking in too much details about politics and the past. At the same time, I am distanced from the history of Jeju 4.3. I am distanced by geography because I grew up in Northern Europe where little to nothing is taught about Korean history. I am distanced by time because the Jeju April Third Incident happened three generations ago, so I am marked mainly by the traumas and residues, rather than by the event itself. I am distanced by language because I do not speak Korean, so the only way I could access the history was by the limited resources that exist in English.
Because of this distance, I did not get to know about Jeju 4.3 until around 2009. At that time, I was working on a film about the effects of war and militarism on women and children in Korea. When people came to know that I had family on Jeju, they would hint at Jeju 4.3 by saying: “Women on Jeju also suffered greatly because of 4.3…” Or they would say: “the United States also played a role in the massacres on Jeju…” These statements would come up only as side notes in conversations but the comments made me curious and I set out to understand the history of 4.3 more in depth.
When I began to research about Jeju 4.3, I became deeply impacted by how pervasive and devastating it was, yet how hidden the event remains. In early 2011, I decided to go to Jeju for the first time in seven years to make a film about Jeju 4.3. There have been several documentaries and many television documentary programs made by local filmmakers and journalists about Jeju 4.3 but very few of these are accessible to an international audience. I decided that what I could do as a Diasporic artist was to make a film about 4.3 that could reach a wider public outside of Korea.
My artworks and films always deal in some way with marginal histories and political subjectivity and I have always been interested in how history is negotiated and how collective memory is formed. I think for those reasons, I was immediately touched, not only by understanding the immensity of the atrocities that occures during 4.3, but in equal terms, learning about the many decades that followed when it was prohibited to talk about the political nature of the event. I was also struck by the persistence amongst Jeju Islanders to work for truth clarification and reconciliation, despite intense efforts from government regimes to silence what had happened.
Instead of making one film, I ended up making a 5-channel video installation titled Reiterations of Dissent. The work consists of five different videos narrating different historical and political aspects of Jeju 4.3 and how the event is currently being remembered. I decided to make a 5-channel video installation where the viewer is situated in the center with the five different videos playing simultaneously and competing for attention, rather than a single film. In doing so, I wanted to emphasize to the viewer how disputed and complex the history of Jeju 4.3 is. It is not a simple narrative but instead an extremely layered history whose legacy is still being negotiated. I call the work Reiterations of Dissent because to me Jeju 4.3 is an ongoing fight for historical justice even sixty-five years after it happened. People who talked about Jeju 4.3 automatically became political dissidents because the event was so heavily silenced by both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nd the U.S. Government. Any attempt to question the official narrative of Jeju 4.3 as a communist rebellion, automatically put into question the U.S. presence in South Korea and became a threat to the very nation state foundation of South Korea based in anti-communism.
With Reiterations of Dissent I wanted to give an international audience who knows little to nothing about the Korean War and the Jeju April Third Incident a historical overview, while at the same time focusing on the present and how the effects and traumas of Jeju 4.3, although it is now sixty-five years passed, are still very much alive.
2013 marks the 6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War armistice but the Korean War has not officially ended, which the continuous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ongoing ideological tensions attest to. Jeju 4.3 is important to remember in this context because it was a precursor to the Korean War. The Jeju massacre happened in 1948, two years prior to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nd the U.S. government wanted to set an example and quell any opposition. At the same time, the history of Jeju 4.3 is a peoples’ history, a history of how many people in Korea wanted unification, peace and autonomy after thirty years of brutal colonial rule.
Today, Jeju Island has been labeled Peace Island but many tourists coming to Jeju only encounter with the beauty of the island and all the UNESCO World Heritage sites. I think it is important to let people abroad know about the history of Jeju 4.3 because in the same way as political dissidence can be a step towards democracy, and as it can be seen a move towards shifting authoritarian power into peoples’ power, historical knowledge can be a peace-making and peace-sustaining factor because it can serve as a reminder not to repeat the atrocity.

Jane Jin Kaisen is a visual artist and filmmaker born in South Korea, based in Denmark.
She is educated from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and The Royal Danish Academy of Fine 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