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2–12.05 기획 단체전 『100 마이너스 30 』

기획 단체전   『100 마이너스 30 』 
2018.11.22(목) – 12.5(수)   

참여 작가   고승욱, 박선영, 연미, 한진오

주최    백마이너스
후원  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특별자치도

‘100 마이너스 30’은  4.3 의 과거기억과 4.3의 미래전망을 연결하기 위하여 4.3 100주년인 2048년을 기점으로 설정하였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 현재의 공유, 그리고 미래의 전망을 향한 첫출발을 100 마이너스 30주년인 2018년에 시작하고자 한다. ‘100 마이너스 30’은  4.3 의 비극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는 예술적 실천을 통해 기억과 기억을 잇고, 감정과 감정을 잇고, 지역과 지역을잇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팀 백마이너스-

[전시 서문] 폭낭에 연 걸리듯 설피낭에 옷 걸리듯
<100 마이너스 30>전에 부쳐 | 김수열(시인)

날이웨다.

해가르고날을갈라무술년십일월스무이틀손 돌바람 불고 첫눈이 오신다는 소설 되옵네다.

땅은 갈라 천하해동조선국 영평팔년 모인굴서 삼을라 삼성친이 도업한 탐라섬 되옵네다.

동서남문 판관이 놀던 모관 이앗골, 원도심 아트 스페이스 C 되옵네다.

무신연유로이공서올리는가허민밥이엇고 옷이 어신 이 공서 아닙네다.

옷광 밥은 얻어 밥 빌어 옷 아닙네까. 천지개벽 인간세상 사람밖에 귀한 게 더 있습네까.

백사장에모래알같은인간중에정체엇고분시 어신 고승옥, 박선영, 연미, 한진오 등이 무자기 축년 4.3 70주년을 맞아 이런저런 궁리 끝에 불 현듯,닐모리70주년이가고어두왁볼각10년 이 가고 경허당 보민 30년 지나 4.3 100주년!

아,그때나는,우리는어떤서늉어떤뽄새로어 느굴헝진밭어느폭낭강알에서무신자파릴 허멍 살암실 건고, 아니, 살앙 있기나 헐 건 가, 허는 그야말로 돈 안 되는 허무맹랑헌 잡도리를 허다가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는 말을 바람편에 언뜻 들어집데다.


고승욱이웨다.

4.3 70주년을 맞아 <돌초>, <말과 돌>, <△의 풍경> 등을 전 시한 바가 있습네다.

제주는 돌이 곧 섬이고 섬이 곧 돌입네다. 돌에도 표정이 있 어 돌에 초를 심어 붉을 밝힙네다. 돌초(Stone Candle)로 되 살이납네다. 살아났지만 ‘ 이름 없는 자 ’이옵네다. 무명(無名) 을 너머 몰명(沒名), ‘몰명헌 놈’ 되옵네다.

<말과돌>은초를켜고제주의절벽풍광을스크린삼아사 람의 그림자를 드리운, 이름 없는 자들의 기억 불러오기 라고 헙디다만 고승욱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듯헙네다. 불안한 질문만 꼬리에 꼬리를 뭅네다.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는가? 나의 환상이 만들어낸 타자 의 얼굴인가? 타자의 주술에 이끌려온 나의 얼굴인가? … ‘이름’이 발하는 빛을 가리지 않고서 ‘이름 없는 자’의 어둠 과 만날 수 있을까? ‘이름’으로 누렸던 권리를 버리지 않고 서 ‘이름 없는 자’의 난파선에 오를 수 있을까?”

<△의 풍경>은 한국전쟁 직후 충청북도 노근리에 발생한 미 군에 의한 한국 민간인 학살을 다룹네다. 미국의 유력 방송에 서보도를하지않았다면아직도한국정부로부터주목을받 을 수 없었던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옵네다. 노근리 유족들은사건의현장을보존하기위해미군이쏜총알의흔 적을 동그라미로 표시했고, 현재도 총알이 박혀 있는 흔적을 세모로 표시허였다 헙네다. 하여 고승욱은 노근리 세모 표시 를 빌어 ‘△의 풍경’이라 명명했다 헙네다.

4.3 70주년을 맞아 4.3평화공원에서는 14,000이 넘는 희생자 원혼을 푸는 일뤠 큰굿이 있었습네다. 그 언저리에 이름 하여 <옛날사진관>이 임시로 들어섰는데 그 뜻은 희생자 유족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희생자에게 남기고픈 말은 물론이고 4.3에 대한 생각을 두루마리 광목에 두서없이 쓰는 사진관 이었습네다. 고승욱이 거기 있었습네다. 하여 이번 작품은 그 때 그 광목을 전시한다 헙네다.

4.3평화공원 전시관에 누워있는, 흰 백자 백비만 백비가 아니옵네다. 4 . 3희생자 유족님네덜이 애산 가슴 존질루와가멍 혈필로 꾹꾹 눌러 쓴 일백 백자 백비도 백비 아니옵네까? 이름이신 유명한 글만 글이 아니라는 겁네다. 이름어신 무명 한 글이 오히려 더 울림이 크고 폭이 넓고 깊다는 겁네다.


연미웨다.

“기억은 몸이 허곡
말은 몸을 가리곡
글은 그 말만 쓰는 거주”

4.3이 몸이고 기억이라면 몸이 허는 말꼭지는 기억입네까, 기억 아닙네까?

4.3이 몸이고 기억이고 거기서부터 말이 나온다면 그 말꼭 지를 받아 쓴 글은 사실입네까, 아닙네까 ?

최진아로 살던 학창시절 서양화를 공부하다 입도헌 지 5년 되었다 헙네다. 나만의 주관적인 감성을 배설하는 그리기에 염증을 느껴 사회로 나아가는 출구를 생각하다 신문이라는 매체를 만났다 헙네다.

몸의 말을 새기는 것이 신문이라면 신문에는 ‘말하는 신문’ 과 ‘말하지 못하는 신문’과 ‘말할 수 없는 신문’과 ‘말을 하되 말귀를 돌려놓는 신문’이 있음을 알았다 헙네다. 뭇 중생 들이 오롯이 사실이라고 믿는 신문이라는 것도 결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헙네다.

하여 신문과 독자 사이 혹은 신문을 작품화한 전시물과 관람객 사이에서 필자 혹은 작가의 주관을 가능한 배제하기 위해 날것 그대로 드러내려 했다 헙네다. 그야말로 말하는 것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과연 누가 그런 말은 하고 있는지, 왜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지에 방점을 두고 생각했다 헙네다.

하여 지난 70년 동안 동아일보, 조선일보 그리고 제주 지역 에서 발행한 신문들 중에 4월 3일자 보도를 작가의 해석 없이 관객들이 직접 찾아보게끔 준비했다 헙네다. 벽에 걸린 작품을 보는 전시가 아니라 관람객들이 직접 신문을 찾아 읽는 전시를 준비했다 헙네다.

4.3의 피해와 고통, 한숨과 눈물은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헙네다. 입도 5년이라 잘 모르는 바도 없지 않거니와 그보다 4.3을, 체험자들의 4.3에 대한 기억을 그날의 기록을 통해서 관람자들이 직접 느끼게 하고 싶었다 헙네다. 4.3을 대상화 한다는 것은 모름지기 4.3에 대한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헙네다.

똑 같은 무게로 전국적으로 아니 지역적으로 4.3이 얼마나 보도되고 알려졌는지, 왜 4.3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야 하 는 지도 말하고 싶었다 헙네다.


박선영이웨다.

철딱서니 엇고 분시 어신 아이웨다. 육지에서 미술 공부허고 타관 객지 미국에서 미술 공부허단 제주섬에 오랐다 헙네다. 예술공간 이아에서 1년, 지금은 이중섭 미술관에서 그리멍 놀멍 살암다 헙네다.

4 . 3 70주년 일뤠 큰굿헐 때 잔부름씨허레 <옛날사진관>에 간 게 인연이 되었다 헙네다. 희생자 유족님네덜 사진찍는 거 도와주멍 4.3을 알아갔다 헙네다. 하여 사진에 찍힌 유족님네 얼굴을 손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헙네다. 옛말에 이르기를 적당히 아프고 적당히 슬퍼야 그림으로 담을 수 있는데처음 만난 4.3 한라산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어 차마 그릴 수 없어서 밝게 그리기로 했다 헙네다. 살아생전환하게 웃어볼 날 없으신 분들에게 웃음꽃을 선물하고 싶었다 헙네 다.

그림 속의 얼굴은 유족의 얼굴입네까, 아니면 그 험악한 시절에 세상 잘못 만나 이승을 마감한 어머님, 아버님의 얼굴입네까? 어느 유족은 너무 어릴때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유족의 얼굴 속에 남아있는 그 아버지를 그려 드리고 싶엇다 헙네다. 사진이 있는데 굳이 손그림으로 그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네다. 하여 이 그림은 유족의 그림이면서 그 희생자의 얼굴이고, 희생자의 그림이면서 유족의 얼굴입네다. 유족의 얼굴이자 희생자의 얼굴이고, 어쩌면 유족의 얼굴도 아니고 희생자의 얼굴도 아닌, 이승에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얼굴이웨다.

벗들도 함께 한다 헙네다. 제주4.3을 그리고 있다는 말을 벗들에게 전하자 미국에 있는 벗, 가까이 있는 벗들이 선뜻 함께 했다 헙네다. 덕분에 그의 전시는 마치 옛날사진관에 갔을 때 벽면 가득 걸려 있던 그림 같은 사진들을 보는 듯헙네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생각에 많은 곡절이 있었다 헙네다. 그 동안 내 안에서 밖으로 나온 적이 없어 내가 발 딛고 선 땅에 대해, 내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대해 무념하고 무심했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달라질 것 같다 헙네다. 웃음꽃 핀 얼굴들, 아프지 않게 그려서 오히려 더 아픈 그림 들입네다.


한진오웨다.

성은 한씨 나으는 마흔다섯 아버님전 뼈 빌고 어머님전 살을 빌어 칠성당에 명 빌고 제석님전 복을 빌어 탄생헌 진오 되옵네다.

두린 때부터 신칼 잡을 팔자옌 허는 소릴 귀가 그차지도록 들으멍 살았수다. 우리 어머니, 아덜 심방되는 거 호건 막아 보젠 나, 스물넷에 혼 번, 서른일곱에 또시 혼 번 굿을 허였수다. 내 나이, 마흔다섯 근당허연, 우리 어머니, 4.3 광풍에 돌아가신 부모님 묻혀있는 밭돌래길 정리허고 성제들광 의논 허연 밭을 폴았수다.

“어머님, 밭 폰 돈, 아덜덜신디 물려주젠 마랑 어머님 쓰고픈 양쓰십서.”

“아이고 고마웁다. 게걸랑 그 돈으로 곤떡이나 사당 먹으켜.”

아이고 우리 어머니, 돌래떡에 나까시리 상에 올려 아덜 심방 되지 말아도렌 그 돈으로 다시 굿을 청허였수다. 올 금년내 나이 마흔다섯에 굿을 허였수다.

공서는 공서웨다

내 증조하르바님, 대한제국시절 하와이로 이민을 간 독립운 동 허멍 살다 중국 거쳐 환갑 넘어 귀향했다 헙네다.

무남독녀 내 할마님, 결혼허고 일본 갔다 행방불명된 남편 뒤로 허고, 막내를 임신허고 귀향했다 헙네다.

내 큰 외하르바님, 무자기축년 4.3시절 산사름으로 이래 화륵 저래 화륵 산을 타멍 살았다 헙네다.

내 아버지, 유복자로 태어났다 헙네다. 내가 태어나기 사흘 전에 병명 모를 불치병으로 자리보전허고 누웠다 헙네다. 그 루후제도 누웠다 일어샀다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헙네다.

내 어머니, 어신 살림에 돈만 생기믄 아버지 병굿에 내 누름 굿으로 서너 해에 혼 번씩 굿청을 집 드나들 듯 오갔다 헙네다.

내 외조부모의 산을 옮길 때 외하르바님의 머리뼈는 뒤통수만 있었다 헙네다. 4.3광풍시절, 토벌대들이 돌로 쳐죽여 부난 뒤통수만 남았다 헙네다.

이번에 굿을 허는디, 추는 굿을 허는 제차였수다. 감장 돌다 멈추고,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고, 제청 앞에 갈라졌다다 다시 일어사고를 반복허는디, 애산 가슴에 얹힌 게 이선, 으, 말, 말 말말. 말, 말, 말, 말~~~ 말~~~~~~~~~.
아이고~~~ 말허켜~~~~~~. 허당, 한순간에 말문이 탁, 터졌다 헙네다.

나: 아이고, 말을 막. 평소에도 겅 헙니다게. 어떤 땐 탁 멕힐 때 잇는디예. 누가 막 나 쏙에서 말을 허젠 허는디 안 나오 고. 아까 처음에 춤을 출 땐 몰라신디 두 번째 춤출 땐 할머니 느낌이 막 나. 할머니 닮아. 나도. 춤추멍도.

어머니: 아니 춤을 추는게양. 영 허영 춤추기 시작을 허민예. 혼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용옥: 호꼼 누워.
나: 아니, 눕지 안헤도 뒈쿠다.

올 금년이 4.3항쟁 70주년 되는 해이옵네다.

어두왁 볼각 삼십 성상 넘어사민 100주년 되옵네다.

폭낭에 연 걸리듯 설피낭에 옷 걸리듯 오늘 일도 몰르곡 내 일 일도 몰르는 토란잎에 이슬 같은 초로인생, 어찌 그 먼 후 일 가늠이나 허겠습네까? 꿈엔들 시꾸기라도 허겠습네까?

하여, 묻습네다. 4.3 70주년이 100주년에게 묻습네다.

4.3 100주년은 누구입네까?
4.3 100주년은 우리에게 무엇입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