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10-03.13 전윤숙⋅박주애 모녀의 『상상, 환상-날개를 펴다』展 + 소장 작품전

전윤숙⋅박주애 모녀의 『상상, 환상-날개를 펴다』展 + 소장 작품전
Jeon, Yoon-Sook & Park, Joo-Ae 『Imagination, Fantasy – Spread the Wings』
+ Collection Show
2010.02.10-03.13

기획 취지
2006년 아트스페이스․씨를 개관한 이래 진행되었던 전시 과정에서 소장했던 작품들과 개인적으로 수집했던 작품들을 모아 소장 작품전을 갖는다. 그리고 얼마 전 문예회관에서 개인전을 했던 전윤숙 박주애 모녀의 <꿈을 꾸다> 전시를 새롭게 기획하여 재조명하는 전시도 동시에 작은 전시회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과 겨우 닷새 만에 끝나버린 좋은 전시를 아트스페이스.씨의 <소통, 문화, 창의성>이라는 취지에 초점을 맞춰 작품과 그에 적절한 프로그램을 함께 구성해서 관람객들을 만나는 것이다.
작가의 창작물은 어느 천재가 평소의 삶과 전혀 관련 없이 갑자기 떠오른 영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살아오면서 겪는 여러 가지 다양한 체험들 그리고 주변과의 관계 등 작가 자신과 그들을 둘러싼 삶 속에서 창작된다는 것을 작가와 작품을 통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작가는 섬세한 관찰과 감동 그리고 그런 자신의 체험을 자신이 선택한 매체를 통해 드러내며 그 결과가 작품으로 태어나게 되고 세상에서 사람들과 만나 다시 경험된다. 그런 가운데 그 작품들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감성으로 또 다른 혹은 비슷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는 것… 이런 점들을 이번에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한달의 전시 기간 동안 세 번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작은 전시회] 전윤숙⋅박주애 모녀의 『상상, 환상-날개를 펴다』展
Jeon, Yoon-Sook & Park, Joo-Ae

Opening
2010.02.10(수) 19:00

[기획의 글] 전윤숙 박주애 모녀 <상상, 환상 – 날개를 펴다>展을 열며
|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은 지적 능력이 아니라 내적인 필요에서 시작된 놀이 본능이다. 창조적인 정신은 사랑하는 대상과 더불어 논다”
– 칼 융(Carl Jung)의 심리유형(Psychological Types)
에릭 부스 Eric Booth,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The Everday Work of Art”에서 재인용.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로 몰입의 상태에 빠지게 되면 어지간한 고생도 감내하면서 그 일을 지속하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지금 하고 있는 경험 그 자체가 아주 즐겁기 때문이라는데…
얼마 전, 모녀가 함께 전시회를 하고 있는 한 전시장을 찾았었다. 중년에 이르러 <꿈을 꾸다>란 이름으로 첫 개인전을 여는 엄마와 그 기회에 더불어 함께 전시장에 나선 대학1년의 예술가 지망생.
엄마인 전윤숙은 버려진 헌 옷가지나 천 혹은 천연염색한 천이나 실 등을 이용해 자르고 바느질하고 붙여 ‘꽃 향기에 취해 들판을 달리는 말의 자유로운 영혼’, ‘꽃을 머리에 꽂고 행복해하는 말의 눈빛’, ‘먼 길을 달려 지친 순간에 구름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행복해하는 말의 미소’, ‘바다에 비쳐 들어오는 햇빛에 반짝이는 생명들’,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워내는 막사발’ 들의 느낌을 주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딸인 박주애는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버려진 천조각과 반짝임이 있는 알루미늄종이, 비닐 등을 잘라 만든 깃털을 재미있게 붙여 ‘막 사냥감을 발견해 비상하는 올빼미의 날개 짓’, ‘생각이 너무 많아 변이처럼 자라난 뿔에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세상사 온갖 이야기 거리들을 잔뜩 거둬들여 주렁주렁 걸어둔 환상 속 토끼’, ‘자신을 칭칭 동여맨 실을 다 풀어내고 날아가고 싶은 누에의 꿈’, ‘지친 육신과 영혼에 기운을 불어 넣어줄 것 같은 부드럽고 따뜻한 사슴’, ‘가볍게 날아가는 코끼리’, ‘폴짝대는 카멜레온’들을 가득 만들어 보여준다.
<꿈을 꾸다>전시회를 계획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전윤숙은 남편 사업에 문제가 생겨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창작의 과정은 힘든 현실적 상황을 잊을 수 있는 환상의 공간과 시간이었다. 그렇게 몰두할 수 있었던 만큼 이들에게는 이 창작 행위가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놀이였고 분노를 용서로 바꿀 수 있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어려운 현실이 이들에겐 오히려 창작의 열정을 더욱 뜨겁게 달군 연료가 되었다.
버려진 천조각들을 이리 저리 잘라서 꽃과 날개 그리고 위로의 비와 푸른 바다로 살려내어 꿈꾸 듯 날아가고 또 떠다니고 싶은 상상을 실현하는 듯 한 환상에 빠지게 해주는 이 작품들을 전윤숙, 박주애 모녀의 <상상, 환상 – 날개를 펴다> 展 으로 아트스페이스·씨에서 다시 작은 전시회로 만나는 기회를 마련했다.
지금 2010년. 빠른 이동수단, 넘치는 정보와 그 소통의 속도 등 점점 물질적 세상 변화를 통과하는 시간의 좌표가 촘촘해지는 세상 속에서 더 빠르고 많은 변화를 기대하며 일부 개인은 더 바빠지는 가운데 물질적 풍요를 만끽하기도 하지만(그래서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개인들은 할 일들을 잃어가거나 더 바빠지지만 더욱 가난해진다. 자연은 더욱 넓게 파괴되어가고 끊이지 않는 지역분쟁과 자연재해로 지구 멸망을 알리는 경고등에 불이 들어오고 있고 세상 이곳저곳이 상처투성이가 되어가고 있다. 물질을 기반으로 한 발전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주고 있는가? 고통의 원인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쳐다보며 계속 속도를 높이는 무한 경쟁시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더욱 소외되고 고통 받고 있다. 그렇다면 그 빠른 속도를 쫒아 애쓰려하기 보다 이제 좀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며 한번 거꾸로 방향을 돌려보는 시도를 해봄이 어떨런지… 만일 현실 속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하시는 분들! 그럼 한번 이 상상과 환상 속에 한번 들어와 보심은 어떨런지… 내가 정말 행복하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걸 찾아내는 길…


[작가의 글] 작업과정 에피소드 | 박주애

엄마와 나는 모녀지간 이라기 보단 자매와 같다. 매일 싸우고 화해하고 얘기하고 웃고 떠드는…그런 사이 이다. 아빠가 한창 벽화사업으로 돈을 벌 시절 엄만 평생 꿈 이었던 전시회를 신청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 시작된 아빠의 다른 사업이 잘못 되면서 집안의 기둥이 휘청거리다 무너져 가족 모두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전시회 날짜는 무심하게도 빨리 다가오고 있었고 , 급하게나마 엄마의 작업은 시작되었다. “지금 너무 힘들지만 이번이 아니면 다신 전시를 못하게 될 것 같아” 라는 엄마의 말은 너무나도 진실 되게 느껴졌다. 엄마가 작업을 하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게 보였다. 나도 하고 싶은데, 내 그림 두어 개만 걸어 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모녀전은 시작 되었던 거다.
오전에는 아빠 인형가게에서 인형을 팔았다. 인형을 팔면 필요한 재료를 사오기도 하였고 라면이나 감자를 사오기도 하면서 버텼다. 밤이 되면 가스페라오라는 기독교 라디오를 들으며 사연도 보내고 DJ 오빠한테 격려의 말도 들으며 즐겁게 그림을 그렸다. 현실은 서글펐지만 작업을 하는 동안만큼은 그런 현실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시를 앞두고 전시를 만들 비용이 필요했던 엄마는 이모들에게 눈물로 호소하면서 경제적 지원을 받아내었다. 그러면서 ‘돈도 안되는 일’을 한다며 질책과 설움도 받았다.
그러나 엄마는 그럴수록 더 마음을 굳게 먹었고, 전시회 오픈을 한날 ,셋째이모는 눈물을 흘릴 뻔 했다고 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출세했다며 부러움도 샀다. 우리모녀는 텔레비전에 뉴스와 신문에도 나오는 영광도 얻었다.
살면서 이런 행복은 정말 오랜만이라며…아니…처음이라며….엄마와 나는 <꿈을 꾸다> 전시회가 끝난 지 3주가 흘러가지만 그때의 감동이 아직도 절절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다시 아트스페이스․씨 작은 전시회 전윤숙, 박주애 모녀 <상상, 환상 – 날개를 펴다> 전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그림처럼 날개를 달고 날아가고 있는 것 같다.

전윤숙
제주대학교 미술학과 한국화 전공인 나는 대학을 28살에 들어갔기 때문에 딸을 업고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었다. 생계를 위해 미술학원과 방과 후 선생님을 10년간 하였고 현재는 그림, 도자기, 한국화, 섬유예술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건 몽땅 하려고 욕심을 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집안일 보단 이상을 꿈꾸며 작업하고 있는 어른아이이다.

박주애
부모님이 미술을 하신 덕에 자연스럽게 미술은 숙명처럼 다가왔다. 잠시 연기와 개그에 꽂혀서 양다리를 걸치기도 했지만 다시 미술로 돌아와 6년간 기나긴 입시 미술 공부를 하였다. 대학입학 후 방황하고 있고 그래서 현재 자유와 정신적 독립을 찾겠다며 날 닮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상상, 환상 – 날개를 펴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작가들과 함께 만드는 나만의 환상 체험
2010.03.06 15:00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버려지거나 안쓰는 여러 가지 헌옷가지, 천, 실, 다양한 종이 등등)을 가져와 작가들과 함께 상상 혹은 환상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해 본다.
1) 신청: 신청순 10명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체험하는 것도 환영)
2) 참가비: 1인 2만원, 2인 함께 신청시 3만원


[소장 작품전 연계 프로그램] “Happy Together”의 작가 김옥선과 함께 나누는 요리 그리고 “Happy Together” 및 그 이후의 작업 상황
2010.02.20 17:00

김옥선 작가와 함께 하는 요리 체험 “사람들은 우리가 무얼 먹는지 궁금해 한다”
: 요리-타이커리 / 샐러드와 맥주를 곁드린 타이 커리
작가의 작업 그리고 최근 작업에 관련된 내용 슬라이드 쇼.
참가비: 20인 한정 1인당 2만원(타이커리와 샐러드 및 맥주 제공 포함)

[작가의 글] 사람들은 우리가 무얼 먹는지 궁금해 한다 | 김옥선

– 매일 양식 드세요?
– 아니요, 우리는 주로 한식 먹어요.

사실 우리는 한식도 아니고 양식도 아닌 그 중간쯤에 있는 것을 먹는다고 해야겠다.
한식을 먹을 때는 국도 있어야하고 반찬도 서너 가지는 있어야 소위 말하는 한식 아닌가?
양식도 그렇다. 우리가 생각하는 양식은 뭔가? 스테이크?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 음식?

우리집은 아침에는 주로 빵과 차를 마신다. 독일인인 남편은 한식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아침에는 양식(?)을 주장한다. 빵도 통밀을 갈아 해바라기 씨나 호박씨를 넣고 집에서 만든 두툼한 독일식 빵이다. 일반 토스트는 한 시간 지나면 또 배가 고프다는 이유다. 베개크기만한 빵을 만들면 우리 세 식구가 5-7일 정도 먹는다.

그리고 점심은 각자 먹고,
가족이 모두 모여 먹는 저녁은 중요하다.

독일 사람들은 모두는 아니지만 따뜻한 식사는 하루 한 끼 정도 먹는다. 보통 아침과 저녁은 간단히 잼이나 치즈, 햄을 곁들인 빵이나 샌드위치, 과일 등을 먹고 한번 보통 점심때(또는 저녁) 따뜻하게 요리된 음식을 먹는다. 우리 집의 경우 그 한 끼가 저녁이다.

밥이랑 국, 김치만으로도 매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나와 달리 남편은 그날 저녁으로 먹고 싶은 메뉴가 항상 다르다. 그래서 저녁에 무얼 먹을지는 대부분 남편이 먹고 싶은 걸로 정해진다. 스파게티, 커리, 퀴쉬, 리조토 등이 주로 우리가 먹는 저녁 중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것이고 감자와 야채 등을 썰어 돼지고기에 소금, 후추 뿌려서 오븐에 굽는다든지 두부와 김치를 볶아 밥 없이 먹는다든지, 돼지고기와 야채를 볶아 토마토소스를 뿌려 밥과 먹는 것 등이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또 다른 저녁식단이다.

그 중 커리는 야채를 싫어하는 딸도 좋아하는 우리 집 주 메뉴중 하나다. 만들기 쉽고 커리 전문 레스토랑에 버금가는 맛을 자랑하는 우리집 타이식 카레는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게으른 주부를 위한 최고의 저녁식단이다.

본아뻬띠!




[소장 작품전 연계 프로그램]
홍보람 작가와 함께 하는 <Busybee Works가 제주서 모은 ‘꿀’ 맛보기>
2010.02.27 16:00

– 홍보람 작가가 이중섭미술관 아트레지던시 프로그램 체험기
– 제주에서 실행한 <마음의 지도> 체험기
– 전시회 후기 등 Busybee works가 모은 ‘꿀’은 어디서? -작가가 제주에 머무는 동안 방문했던 곳들 이미지와 함께 작가의 느낌관련 대화
참가비: 무료

[작가의 글] ⌜상 상 想 象 : Imeages of Idea⌟(2009년 8월7일- 8월 20일, 작가노트) | 홍보람

작년 늦은 봄 미국의 작은 시골마을, 자연이 아름다운 버몬트라는 곳으로 작가 거주 프로그램을 떠나게 되었다. 그 직전까지 나는 미술과 관객사이 소통에 대해 고민하며 한참 공공미술을 벌이느라 정신없이 바빴고, 차분히 앉아서 내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는지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고 언젠가부터 나는 ‘그림을 실컷 그리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얘기하기 시작한 것 같다. 어지럽던 상황들을 정리하고 2008년 버몬트창작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정말 그림을 그리는 것 뿐 이었다. 주변 자연 경관은 나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주었고 나의 깊은 곳에서 부터 채워주었다. 그 안에서 나는 서서히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해낼 수 있었다. 거주 프로그램 이후 미국의 대자연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자연이 얼마나 나에게 많은 것을 말없이 알려주는가를 느꼈고,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자연 앞에서 나는 한껏 자유스러움을 느끼며 나의 존재의 당위성(경쟁이 심한 도시에서 나는 얼마나 쉽게 스스로에 대한 무가치함을 마주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나를 상하게 했는지…)에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삶의 에너지로 기뻐하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긴 여행을 마치고 주거지인 서울로 돌아와서, 나는 한껏 긍정적으로 바뀐 나를 어떻게든 유지해보려고 안간힘을 썼고, 언제든 기회가 되면 다시 자연이 가까운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 제주도의 이중섭 창작 스튜디오 공고를 만났고,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 여기 제주의 풍부한 자연의 품 안에 머물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제주에 오기 전에 추상화를 그려본 적이 거의 없다. 이곳에서 나는 봉긋하게 솟은 오름과 쉼 없이 일렁이는 바다, 오려 붙인 듯 솟아오른 절벽과 공룡의 피부 같은 화산암, 뜨거운 채 굳어진 돌들과 땅의 저 깊은 곳에 간직된 동굴들. 수시로 바뀌는 날씨와 하루도 같은 적이 없는 지척의 섬들을 보았다. 빈집으로 파고드는 식물, 하루하루 푸르러지는 무성함에 나는 제주의 자연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형상을 보고 있다 보니 내 머리 속에 떠돌던 생각의 단편들이점점 하나의 이미지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 내용을 말로 풀어보자면, 어떻게 하나가 다른 하나와 만났는지(용암과 물의 만남으로 땅의 모양이 만들어 진 것처럼), 서로가 어떻게 서로를 내포하는지 (물과 뭍의 관계처럼), 서로가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파도에 씻기는 돌의 모양이 닳고, 파도는 돌이 그곳에 있음으로 해서 흐르는 방향이 결정되듯이) 등, 서로의 관계에 대해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자연의 에너지가 나에게 전해져 내가 가장 익숙한 방식인 그림 그리기로 풀어내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형상은 의지를 담으며, 담긴 것에 따라 형태가 정해지고, 균형의 상태는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한 순간이며 언제나 불균형 안에서 다양한 변화와 생동이 있다는 것을 자연을 통해 배우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자연을 보면, 자연은 참 말하지 않고도 그 생명력으로 왁자지껄 하게 흥겹다. 자구리의 물은 좁은 수로를 통과하며 얼마나 아름다운 물결을 만들어 내는지, 또 온실 유리창에 자리 잡은 곰팡이들의 성장은 기운차고 거침이 없다. 그 안에는 자연스럽게 조화로움이 있고 생명의 힘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옮겨보려고 애쓴다. 옮기는 와중에 그 자연스러움과 조화로움을 내가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을까 싶어서 그려보곤 한다. 그러면 그림은 나에게 ‘아직도 멀었다’는 메아리를 들려주지만 그 순간 나는 자연의 에너지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만나는 것이라 믿는다.

제주에서의 생활로부터 나는 나날이 좁아지는 시공간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전체의 그림을 위해 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좁아진 시공간으로 갑갑함과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그림그리기에 마주할 수 있다.

나의 그림은 내가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형상으로 떠오르곤 하는데)에 가까이 가는 데 목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밑그림 정도처럼 단순하기도 하다. 대부분 나는 표현을 덧붙여 마음 졸이는 나를 닮아 그림에 시원한 느낌이 사라지고 답답해지곤 한다. 이렇게 되는 경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욕심을 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아직 서투른 데다 조급한 마음이 앞서 자꾸 욕심이 난다.

나는 지금 시간이 모자란다고 느낀다. 또 나의 재능이 모자라다고 느낀다. 매번 어쩔 줄을 몰라서 이리저리 헤매고 작은 결정에도 안절부절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안에서 길을 찾아야 출구가 나오지 않을까라는 것을 가끔은 알겠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차분한 생각이 들 틈이 없이 마음이 바쁘기만 한다. 정말 스스로 만족하고, 자연이 나에게 베푼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가 인정하고 노력해나가면 좋을 것 같은데 잘 안 된다. 이럴 때는 천제 작가들의 그림을 너무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봤다는 후회가 든다. 나의 능력껏 이룰 수 있을 만큼 이루면 되는데 자꾸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다.

어느덧 나무에는 열매가 맺었다. 내가 작은 일들로 안절부절 못하고 확신 없이 걱정하며 머리만 커진 동안 나무는 묵묵히 꽃도 피우고 잎도 내고 열매까지 맺었다. 이렇게 또 자연은 가만히 알려준다. 묵묵히, 아무것도 흐트러트림 없이 이루어야 할 것을 하라고. 아이고. 예 알겠습니다. 묵묵히.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