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15-08.30 홍성담의 야스쿠니신사의 迷妄-2 동아시아 순회展 Hong, Sung Dam’s Asia Tour Exhibition: Illusions of Yaskuni Shrine 2

홍성담의 야스쿠니신사의 迷妄-2 동아시아 순회展
Hong, Sung Dam’s Asia Tour Exhibition: Illusions of Yaskuni Shrine 2
2008.08.15(금)-08.30(토) 11:00~18:00 ※ 금요일 11:00~20:00 연장 개장

Opening
2008.08.15(금) 18:00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자국 내에서 조차 문제제기가 되고 있으며 외교적 관계 특히 아시아 국가들과 일본의 관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를 미화시키면서 정서적인 자기도취에 빠지고 있다. 그것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여전히 진행 중 이며 평화와 공존을 위한 노력의 부재를 입증해주는 증거이다.
작가 홍성담은 몇 년 전부터 동아시아에 공통된 문화적 원형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현장을 찾아다녔다. 그런 가운데 한국과 대만 그리고 오키나와 이 세 곳의 근현대사의 문제, 즉 이 세 곳 모두가 일본의 식민지였고 미국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시아의 불안은 일본의 재무장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 불씨가 야스쿠니에 묻어져 있으며 야스쿠니와 천황제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4․3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을 겪은 제주도는 오키나와 그리고 대만과 연대하여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과 관련한 학술연구 및 문화예술교류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 곳이고 작가 역시 적극적으로 이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왔다.
야스쿠니신사는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니라 ‘천황의 신사’이며 ‘국가의 신사’다. 이곳에 봉안되면 생전에 어떤 일을 했던지 간에 전사자가 아니라 신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고인의 개인적 영은 유족의 영이 아닌 국가 제사의 대상으로써 신령이 되는 것이다. A급 전범14명을 비롯해 246만 6천의 야스쿠니 영령가운데 약 2만 1천여 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합사되어있는데 유족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제대로 전사통지도 못 받았고 동의를 요청받은 적도 없다. 한 유족은 “야스쿠니 합사는 살아서는 강제 징병이고, 죽어서는 강제 수용인 이중의 강제 연행”이라고 했다.
2007년 11월 일본 토쿄의 마키갤러리에서 홍성담의 <야스쿠니신사의 迷妄>展이 개최되었다. 이 전시는 역사에서 소외된 인간의 삶을 끌어내는 노력의 일환의 하나인 <21세기 동아시아 문화론>으로 기획되었다. 2008년 8월 현재 작년 도쿄전시 이후 제작된 작품 일부를 추가하여 이 곳 아트스페이스․씨 초대전으로 열리게 되었고 다시 타이완으로 향하게 되는 아시아 순회전이 되었다. 그는 이 전시를 통해 야스쿠니신사가 상징하는 일본의 제국적 팽창주의와 이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갈등과 아픔을 시각적 매체를 통해 좀 더 우리들 마음에 직접 호소하고자 한다.
작가는 5년 전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해보고 자신의 일본인 친구들을 가위 누르며 의식을 묶고 있는 것이 야스쿠니가 상징하는 문화적 억압체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끼나와의 평화공원 박물관, 큐우슈우 치란의 평화공원 박물관등을 답사하면서 현대 일본이 주장하는 ‘평화’가 궁극적으로 그들이 일으킨 지난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그리워하는 새로운 파시즘을 재생산하는 문화적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홍성담은 야스쿠니에 대한 이 그림들을 우선 그 친구들을 위해서 그렸다. 그는 국가주의나 국가폭력 그리고 죽음의 진상에 대한 은폐와 같은 어두운 그림자를 한국 역시 닮아간다는 혹은 그 가능성을 느꼈고 따라서 이 연작을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그렸다고 한다.
일본인 영화감독 ‘오오우라 노부유키’는 자신들은 피부나 모공까지 스민 내안의 천황 때문에 야수쿠니의 문제를 다루기가 어려운데, 홍성담은 “결코 큰소리로 말하는게 아니라 중얼거리는 것처럼 그렸다. 자신의 어둠속 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한마디도 놓치지 않도록 자신도 작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바로 셔먼이 중얼거리는 것처럼 사자와 만난다. 그 과정에서 사자들을 이 현실세계에 부활시킨다. 이렇게 일본 근대의 어둠에 다가가 그 어둠을 역조명 한다. 여기에 레디칼( Radical-급진적인)의 진정한 의미가 숨어져 있다고 나는 본다 “고 말했다. 조선미술 연구자 후루카와 미카는 ‘야스쿠니는 오늘날 그리고 미래의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공존을 위협하는 제국 일본의 그림자를 그대로 드리우고 있으며, 일본은 과거의 전쟁을 정당화하며 야스쿠니의 미화 작용에 정서적으로 끌린 채 자기도취에 빠져있다. 그것은 일본 정치가들의 야스쿠니신사참배로 이어져 주변국들과 정치 외교적 문제가 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실태에 대해 역사적 사실 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정서와 미의식을 음미하며 자신의 내부에서 야스쿠니의 형태와 색을 빚어내 회화라는 형식으로 우리들 앞에 내 놓는 것’이라고 했다.
미술사가 사이먼 샤마는 “걸작은 세상에 대해, 그리고 그 세상이 우리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대해, 어떤 지혜로도 설명할 수 없는 진실들을 역설 할 수 있다”고 했다. 요즘 일본은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 주장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그런 역사를 교과서에 실어 일본의 미래세대를 교육하려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런 전시를 가지게 됨으로써 더욱 그들의 제국적인 역사관에 대한 실체를 드러내고 그것을 미술을 통해 감상하고 교감하고자 한다. 특히, ‘평화의 섬’을 지켜나가려 하는 희망을 가진 이곳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 전시가 우리에게 더욱 깊은 의미를 더해준다.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도 그들은 ‘천황의 부름’을 받고 죽음을 향해 출정을 했다.
‘우리는 죽어서 야스쿠니 뜰에 사쿠라꽃으로 피어 다시 만나자’ 유족이 감격의 눈물에 목이 메어 가족의 전사를 기뻐하게 되고 거기에 공감한 일반 국민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전쟁이든 천황과 국가를 위해 죽기를 스스로 희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야스쿠니의 신앙이다. 당시에 죽었던 영혼들에게 아직까지도 칼날 위를 행군하게 만드는 문화의 교묘한 상징을 야스쿠니를 통해서 구사한다. 침략전쟁을 현창하기 위해 제사지내는 현대일본의 위태한 모습이다.”
– 홍성담, 2007.08.21

“생명 앞에서 연민하는 것이야말로 거룩한 정신이다. 타자와 고통을 함께 나누고, 느낌을 함께한다는 뜻을 갖는 말인 ‘연민’은 사랑의 궁극적인 표현이며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한 분노와 증오의 광범위한 영역이기도 하다. (…) 우리의 인간성을 고립, 차단 시켜 그 속에서 죽게 하는 것보다는 고통을 나누면서 인간성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생명을 창조하는 예술가의 또 다른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들, 적극적으로 ‘연민’하지 않고는 다가오는 21세기도 역시 핏빛에 잠겼던 20세기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
– 홍성담, 2007.11.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평론] 홍성담전(가야바쵸 갤러리 마키, 2007.11.02-11.22)
| 후루카와 미카(조선미술 문화연구)
※ art in culture 전시리뷰

작년 가을, 동경의 한 갤러리에서 ‘야스쿠니신사’에 관련된 이미지가 회화로 다시 태어나 보는 이를 압도했다. 바로 홍성담의 <야스쿠니의 미망(迷妄)전이다. 이 전시는 역사에서 소외된 인간의 삶을 끄집어내어, 9․11 이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고찰하는 연속기획 <논증-군도의 아트 고고학>의 일환인 <21세기의 동아시아 문화론>에서 진행된 두 번째 기획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동아시아라는 공간을 성찰하고 그 속에 묻힌 목소리를 표현하려는 기획의도 아래, 한국 민중미술의 대표 화가 홍성담이 정한 소재는 동아시아의 역사적 갈등이 길항하는 곳, 바로 ‘야스쿠니신사’이다. 그 ‘야스쿠니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것을 미술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시도는, 패전 후 60여년이 지난 일본에서는 실로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홍성담은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1980년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군부에 의한 광주시민 학살 와중에도 문화선전대로 활동하였고 후에 민주화투쟁과 호응하는 민중미술운동을 앞장서서 떠맡았다. 그 경험이 피와 살로 축적된 그의 눈에 야스쿠니신사는 오늘날 그리고 미래의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공존을 위협하는 제국 일본의 그림자를 그대로 드리우고 있는 거대한 요물로 비쳐졌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일본인은 전통적인 신사의 모습을 빌린 채 ‘국가=천황’ 의 이념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황군의 죽은 자들’의 헌정 시설이라는, 그 요물의 본색을 직시하려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잘못된 인식을 긍정하기라도 하려는 듯, 과거의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정당화하면서 ‘영령’을 증산시키는 야스쿠니의 미화 작용에 정서적으로 끌린 채 자시도취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최근 고이즈미(小泉) 전 수상 등 일본 정치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정치, 외교 문제가 되고 있는 현상에서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한편, 2006년에는 A급 전범과 함께 무단으로 합사된 한국 타이완 오키나와 일본인 유족들이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둘러싼 인식의 차이는 미해결된 채 남아 있다. 홍성담은 이러한 실태에 대하여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정서와 미의식을 음미하여 자신의 내부에서 야스쿠니의 형태와 색을 빚어내, 회화라는 조형 형식으로 우리들 앞에 내 놓은 것이다.
일본 칼 위를 행진하는 군인 모습을 한 해골, 죽어서도 합사되어 제국 일본의 사슬에 묶여 있는 조선인 병사, 유치한 전쟁사관으로 치장된 애니메이션과 같은 유슈관(遊就館), 혹은 원폭이 투하되든 말든 국체호지(國體護持)를 위해 ‘장난감’으로 된 삼종신기(三種の神器)를 소중하게 안고 있는 천황, 그리고 야스쿠니를 배경으로 한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골 모습은 한반도와 야스쿠니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전쟁 미화에 한 몫을 한 사쿠라의 색조를 배경으로 이러한 희화화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람회와 더불어 진행된 심포지움에서는 “일본인은 불가능한 것으로, 한국인이기 때문에 야스쿠니를 표현할 수 있었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숱한 표현이 시장의 원리에 따라 소비 사이클에 회수되어가는 일본의 문화적 토양, 그것을 타파하려는 자각조차 점차 옅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시니컬하게 따르는 것에 다들 익숙해져 있다. 홍성담의 작품과 심포지움은 야스쿠니(넓게는 천황제)가 문화장치로서도 무의식적으로 일본인을 옭아매고 있으며, 우리들 속에서 표현의 억압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은 이번 기획을 준비했던 나조차도 준비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자기 규제를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역사적 정치적 모순덩어리라 할 수 있는 야스쿠니는 그 어떤 것보다 국가적인 감정과 때로는 폭력의 유발조차 마다하지 않는 주제이며, 가까이 하면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주제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더욱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암흑의 터부처럼 매장되어 온 ‘야스쿠니(넓게는 천황제)’를 표현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은 아니라는 점을 이 전시에서 느끼게 된 이들도 다수 있지 않을까.
이 전시는 올해 8월 제주도에서 다시 한번 개최될 예정이다. 지금, 야스쿠니의 어둠이 깨지기 시작했다. 이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더욱 더 목소리를 높여 일그러진 역사 속에 잠겨 있는 인간의 삶을 온갖 각도로 비춰 표현해 가며 그 야스쿠니의 어둠을 언젠가 걷어낼 수 있길 바란다. (번역:이령경)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Yasukuni Shrine / War Shrine)
Japan’s controversial shrine

야스쿠니신사는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니라 ‘천황의 신사’이며 ‘국가의 신사’다. 이곳에 봉안되면 생전에 어떤 일을 했던지 간에 전사자가 아니라 신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고인의 개인적 영은 유족의 영이 아닌 국가 제사의 대상으로써 신령이 되는 것이다. A급 전범14명을 비롯해 246만 6천의 야스쿠니 영령가운데 약 2만 1천여 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합사되어있는데 유족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제대로 전사통지도 못 받았고 동의를 요청받은 적도 없다. 한 유족은 “야스쿠니 합사는 살아서는 강제 징병이고, 죽어서는 강제 수용인 이중의 강제 연행”이라고 했다.

_

Yasukuni Shrine – the name means ‘peaceful country’ – was founded in 1869 on the orders of Emperor Meiji. It is dedicated to the souls of about 2.5 million Japanese men, women and children who died in the name of their country since that time. They include soldiers, war-time nurses, students who entered into battle, and those who committed suicide in shame at the end of World War II. At the centre of the shrine’s controversy is the fact that those venerated include 14 convicted class A war criminals, including Prime Minister General Hideki Tojo. Within the shrine, the souls of the dead are worshipped rather than just remembered. According to Japan’s national Shinto religion, humans are transformed into “kami” or deities when they die, and as such are worshipped by their descendants. The kami of remarkable people are enshrined. Surrounded by war banners and military regalia, the Yasukuni kami are venerated by hundreds of thousands of visitors who attend the shrine each year. Compared with most Shinto shrines, which were founded hundreds of years ago, the dedication of the Yasukuni shrine was a relatively recent affair. Analysts say that because the main wars it commemorates are those with China and the US, it appears to the political left to symbolise foreign invasions. To the right, it is a symbol of patriotism.

Heated debate
The shrine is frequently at the centre of political storms. There have been several parliamentary debates aimed at removing General Tojo’s kami, but these have been blocked every time by nationalists.
The debate intensifies in the lead up to 15 August – the anniversary of Japan’s surrender in World War II. Several cabinet ministers pay their respects at the shrine each year, but only one Prime Minister, Yasuhiro Nakasone in 1985, has made an official visit since the war.
Former Prime Minister Ryutaro Hashimoto made what he said was a private visit, on his birthday in July 1996. Current Prime Minister Junichiro Koizumi has made six visits to Yasukuni since he took office in 2001. Arguments have ensued over whether these were made in a private or official capacity, although Mr Koizumi has denied such a distinction can exist for a country’s leader.
“I’m both a public and private person,” he has said.
Mr Koizumi has repeatedly argued that his visits are to pray for peace and that Japan should never go to war again.
But the visits have angered Japan’s Asian neighbours, especially China and Korea, who were victims of the country’s military aggression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 Story from BBC NEWS(2006/08/15 06:25:54)
http://news.bbc.co.uk/go/pr/fr/-/2/hi/asia-pacific/1330223.stm

홍성담
HONG SUNG DAM
洪 成 潭
 
www.damibox.com

 조선대학 미술과 졸업
 1999년/  개인전 ‘1999-脫獄’ (가나아트 센터, 서울)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제18회 월드와이드비디오 페스티벌(암스텔담)
 2001년/ ‘회화의 복권 전’ (국립현대미술관)
          행방불명 전 (광주시립미술관)
 2002년 / 홍성담 판화전 (스리랑카, 니감보)
 2003년/  홍성담 작품전 ‘저항과 명상’ (퀸스 뮤지엄, 뉴욕)
 2004년/  'Red' (가나아트센터, 서울)
 2004년/  ‘삶과 죽음의 경계 - 니르바나’ (모란미술관)
 2005년/ 홍성담 판화전/사키마 미술관 (일본,오끼나와)
 2005년/ 홍성담 개인전 '저항과 명상-2' /붕크갤러리(독일, 뒤셀도르프) 'Resistance & Meditation-2' / Kunstort Bunkerkirche (Dusseldorf/Germany)
 2006년/세화견문록展/한가람미술관(서울)
 2006년/‘오월광주의 기억에서 동아시아의 평화로’展/교토시립미술관(일본, 교토)
 2007년/홍성담개인전 '야스쿠니의 迷妄' / 마키갤러리(일본 ,도쿄)
 2008년/저항과 평화의 바다展 / 평화원갤러리(제주 마라도 기원정사)
 2008년/ ‘Meme Trackers ’ 展 /송장미술관(중국 북경)
 2008년/ 목포 ART FAIR/ 목포문화예술회관(목포)
 2008년/ 인권, 사람이 하늘입니다/ 모란갤러리(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