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01-06.30 제주4⋅3평화기념관 개관기념 특별전 강요배의 4⋅3역사화 『동백꽃지다』 History Painting on the Jeju April 3rd Uprising by Yo-bae KANG 『The Camellia Has Fallen』

제주4⋅3평화기념관 개관기념 특별전
강요배의 4⋅3역사화 『동백꽃지다』

The Special exhibition: “The Camellia Has Fallen”, celebrating the opening of the Jeju April 3rd Uprising Memorial Peace Hall- History Paintings on the Jeju April 3rd Uprising by Yo-bae Kang
2008.04.01(화)-06.30(월) 09:00~18:00
제주4⋅3평화기념관 예술전시실

주최_제주특별자치도 4⋅3사업소
기획_아트스페이스⋅씨

4.3 60주년을 맞는 올해 4.3사료관이 개관되었다. 4.3의 기억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1978년, 그 참혹한 수난사는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4.3연구에 불이 지펴졌으며 문학과 연극 그리고 미술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시작하였다.

강렬한 시각 매체인 미술을 통해 1992년 강요배의 역사연작화 <동백꽃 지다> 展이 서울과 제주 그리고 대구에서 열리면서 4.3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이 증폭되었다. 작가는 이 작품들을 창작해내기 위해 4.3에 대한 전문연구자 못지않은 연구를 통해 풍부한 지식을 쌓아나갔다.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제주에 널리 퍼져있는 유적지를 답사하며 그 시기를 지나온 이들과 함께 아파하는 고통의 체험을 거치며 창작의 길을 걸었다.

작가는 4.3의 전사(前史)로서 고려시대의 외세인 몽골의 침략과 삼별초의 전투, 조선시대 왜구와의 싸움, 이재수난, 공동체 삶을 파괴했던 일제에 대한 저항전통의 연장선 속에서 4.3을 바라보고 있다. <저항의 뿌리>, <해방․1945-1946>, <탄압․1947>, <봉기․1948>, <학살․1949> 의 다섯 단계로 경과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4.3을 민중들의 저항이라는 역사인식 속에서 창작하였음을 말해준다.

작가는 창작의 관점을 “영향력 있는 소수의 움직임보다 당시를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의 흐름들을 그려보며 창작해나갔다”고 한다. 4.3 60주년을 맞아 4.3사료관을 개관하면서 이 전시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자칫 이 작품들을 역사기록화로만 보게 하는 한계성을 갖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자칫 역사화가 빠지게 되는 진부함을 넘어 예술적 가치를 느끼게 해주면서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역사의 무게와 깊이를 드러내준다. 작가는 종이에 흑백의 뎃생으로 시작하여 커다란 화면의 유화로 마무리 짓는데, 그 당시 벌어졌던 일들을 적절하게 배치한 서술적 구성으로 4.3이라는 역사적 사실 전달과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치밀한 구성과 치열한 묘사로 회화적 개성을 깊이 있게 표현하였다.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과거의 아픈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더욱 진실한 이해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번 특별전이 4.3을 가슴으로 깊이 느끼는 소중한 체험이 됨으로써 우리의 무의식을 깨워 현실을 되돌아 볼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Purpose of the exhibition

The exhibition “The Camellia Has Fallen” by Yo-bae Kang was held in Seoul, Jeju and Daegu in 1992. It was hugely important in that it drew the public’s attention to the Jeju April 3rd Uprising.

The opening of the Jeju April 3rd Uprising Memorial Peace Hall, this year, marks the 60th anniversary of the Jeju April 3rd massacre. In order to celebrate the launching of the Jeju April 3rd Uprising Memorial Peace Hall, the special exhibition of a series of history paintings “The Camellia Has Fallen” is being held. Kang’s paintings are based on a wide range of document research on the April 3rd Massacre as well as field investigations. Kang’s intimate understanding on the incident which he built through meeting with those who underwent these difficult times is portrayed in these paintings.

Kang focused on those men, women and children closest to the events of April 3rd rather than the people in power. Many may regard these works as simply records of a historical event, however Kang’s paintings go beyond cliche. His paintings stand on their own artistic merit. These paintings express the significance and depth of a history that is difficult to describe with words alone. Kang began with black and white sketches on paper and completed his paintings in oils. As a chronicle of the events of the time, he was faithful to conveying and recording historical facts while also portraying the individuality of the subjects.

Around the world there are still many innocent people suffering through various conflicts. The fact that history continues to repeat itself makes it necessary for us to reflect deeply to gain a clear understanding of mistakes made in the past. It is hoped that this special exhibition will provide an opportunity to experience the April 3rd uprising with a true heart and awaken our feelings to empathize with those who endure conflict.

The Exhibition

This special exhibition consists of a series of 50 paintings by artist Yo-bae Kang based on the April 3rd incident. Kang portrays the April 3rd Uprising as an extension of the Mongol invasion and the Sambyeolcho (Three Patrols) Rebellion in the Goryeo Dynasty, combat with Japanese pirates in the Joseon Dynasty, Lee Jae-Soo’s Rebellion, and the resistance against the Japanese Imperialism which destroyed the life of community. In these paintings, he represents this progression with five phases: “The Roots of Resistance”, “The Liberation of 1945 to 1946”, “The Suppression of 1947”, “The Uprising of 1948”, and “The Massacre of 1949”. This suggests that Kang has created his paintings in line with the historical concept of a people’s resistance.


1. 저항의 뿌리
이 작품들은 4.3의 전사(前史)로서 고려시대의 외세인 몽골의 침략과 삼별초의 전투, 조선시대 왜구와의 싸움, 이재수난, 공동체 삶을 파괴했던 일제에 대한 저항 전통의 연장선 속에서 4.3을 바라보고 있다.

2. 해방 1945-1946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일제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제주민중은 혹독한 공출과 강제노역에서 해방되고 정치·경제적 자유와 통일된 독립국가 건설을 희망하게 되었다. 또한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척결하고 일제잔재가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건국준비위원회에 이어 각 읍, 면, 리 단위의 인민위원회가 도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출범하여 민중생존권 확보 및 치안유지활동을 전개하는 등 새로운 사회를 준비해갔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으로 몰려드는 귀환동포의 증가와 일본으로부터의 송금액 감소로 제주도민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군정은 일제하 친일 경찰 및 관료들을 재기용함으로써 도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더욱이 수십 년 만에 닥친 가뭄과 호열자로 인해 민중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3. 탄압 1947
가뭄과 호열자로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군정관리와 경찰 고위간부가 가담한 모리배 문제로 미군정 당국에 대한 도민사회의 불신이 깊어졌다. 또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양과자반대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기념대회는 제주현대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이날 집회 후 해산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제주도민은 3·10 민관총파업으로 맞서며 책임자처벌을 촉구했다. 미군정당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응원경찰과 서북청년단 등 극우반공청년단체를 제주에 파견하여 대규모 검거선풍을 일으켰다. 1년 동안 2,500여 명이 구금되는 무차별한 검거와 고문이 행해졌다. 이에 따라 많은 젊은이들이 탄압을 피해 제주 섬을 떠나거나 가까운 야산으로 입산했다. 특히 서북청년단과 응원경찰의 횡포는 나날이 기승을 부리며 민심을 자극했고 강력한 저항을 예고했다.

4. 봉기 1948
1948년 1월, 남로당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이루어지고, 3월 들어 일선 지서에서 잇따라 2건의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다. 제주사회는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침내 남로당제주도위원회는 조직의 수호와 방어, 당면한 5·10단선단정 반대의 명분을 내걸고 1948년 4월 3일 새벽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4·28협상’으로 평화적인 사태해결 기미가 보였으나, 우익청년단체에 의한 5월 1일 ‘오라리 방화사건’ 으로 합의는 깨졌다. 무장대는 선거관리위원과 우익인사를 습격하고 주민들을 입산시키는 등 단독선거를 파탄내기 위한 행동에 돌입했다. 결국 2개 선거구가 무효화되면서 제주도는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5·10선거를 거부한 지역으로 기록됐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제주상황은 남한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북쪽에 또 다른 정권이 세워짐에 따라 단순한 지역문제를 뛰어 넘어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다. 토벌대는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곧이어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강경 진압작전이 전개되었다.

5. 학살 1949
4·3은 제주도 전지역에 걸쳐 지식인을 포함한 많은 인명희생을 낳았다. 특히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해안 마을에 소개한 주민들도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그 결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입산하는 피난민이 더욱 늘었고, 이들은 추운 겨울을 한라산 속에서 숨어 다니다 사살되거나 형무소 등지로 보내졌다. 심지어 진압 군경은 ‘도피자 가족’을 대신 죽이는 ‘대살(代殺)’을 자행하였다. 진압부대가 2연대로 교체됐지만, 재판 절차도 없이 주민들이 집단으로 사살하는 잔혹한 진압은 계속됐다. 1949년 3월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가 설치되면서 진압‧선무 병용작전이 전개되었다. 이때 도피입산했던 많은 주민들이 하산했다. 1949년 6월 무장대 총책 이덕구의 사살로 무장대는 사실상 궤멸되었다.

1. Roots of the resistance
In these paintings, the April 3rd Uprising is portrayed as an extension of the Mongol invasion and the Sambyeolcho (Three Patrols) Rebellion in the Goryeo Dynasty, combat with Japanese pirates in the Joseon Dynasty, Lee Jae-Soo’s Rebellion, and the resistance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which destroyed the life of the community.

2. Liberation of 1945 to 1946
On August 15th, 1945, Korea was finally liberated from Japanese rule. Jeju Islanders were liberated from the harsh compulsory crop payment system and were no longer forced to labor. People were now looking to enjoy political and economical freedom and to establish a unified sovereign state. They believed that pro-Japanese collaborators and traitors would be dismissed and the remaining vestiges of Japanese imperialism would be rooted out from their land. With the launching of the People’s Committees for each municipal unit of Eup (county), Myeon (town), and Li (village), after the Committee for the Preparation of Korean Independence, and with the full support of the Jeju Islanders, Jeju strove to establish a new society ensuring public order and securing the rights of people to live a free life.

However, an increase in returning compatriots flocking into their liberated country and a decline of money remitted from Japan caused financial difficulties for Jeju islanders. Moreover, the United States Military Government re-employed pro-Japanese police officers and governmental officials from the period of Japanese rule, which resulted in intense opposition from the residents. This volatile situation was further aggravated by a cholera epidemic and the first drought in many decades. The quality of life of the Jeju people began to deteriorate further.

3. Suppression of 1947
People were panic-stricken from the drought and a cholera epidemic. the islanders began to distrust the U.S. Military Government. This was largely due to profiteering involving U.S. military government officials and high-level police officers. At that time, a student-led boycott of American confectionary took place.

On March 1, 1947, the commemoration of the 28th anniversary of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was a turning point in the modern history of Jeju. On that day, 14 people were killed or injured when police opened fire in an attempt to dismiss a rally. Jeju Islanders responded on March 10th with a general strike engaging the private sector and local government, demanding punishment for the people responsible for the massacre. The U.S. Military Government dispatched police reserves and an extreme right-wing, anti-communist gang (the Northwest Youth Corps) to Jeju from the mainland to carry out a large-scale roundup. Over the following year, 2,500 people were indiscriminately arrested, detained and subjected to torture. Many young men left Jeju or hid in nearby hills and mountains. Violence by the police reserves and the Northwest Youth Corps became increasingly rampant and provoked public sentiment, giving rise to intense opposition.

4. Uprising of 1948
In January 1948, a large-scale arrest was made of the members of the Jeju Committee of the South Korea Labor Party. At the beginning of March, there were two cases of torture resulting in a death in a police box.

With the justification of defending themselves and boycotting the election on May 10th, the Committee of the South Korea Labor Party finally rose up in arms at dawn on April 3rd, 1948. Negotiations on April 28th signaled a peaceful settlement to the insurrection, however, the “Oh-ra Village Burning” committed on May 1st by the right-wing youth gangs, nullified the agreement. Armed guerillas undertook preparations to boycott elections that would further divide Korea into two countries. They encouraged residents to retreat into the mountains. As a result, two electoral districts were not included in the voting, and the province of Jeju was recorded as being the only region which refused to vote in the May 10th election.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was established in South Korea, and another government was built in North Korea. Jeju began to be recognized as a challenge to the legitimacy of the government and was no longer seen simply as a regional problem. The punitive force declared that people traveling through mountainous areas more than five kilometers from the coast would be declared insurgents and be shot to death. Martial law was proclaimed on Jeju on November 17, and the large-scale violent suppression using scorched-earth tactics was carried out on villages in both rural and mountainous areas.

5. Massacre of 1949
The April 3rd incident brought about significant human casualties, including the elite of Jeju. Everyone was affected. Residents dwelling in coastal areas were accused of cooperating with the guerillas and then murdered. As a result, more and more people sought refuge in the mountains in order to survive. When found in hiding around Mt. Halla on a cold winter’s day, they were either shot to death or sent to prison. The military and riot police executed the family members of the refugees.

The government military soldiers were replaced with the 2nd regiment, and the brutal crackdown continued. Innocent Jeju Islanders were persecuted without trial and massacred.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Jeju Region Military Command in March 1949, the US Military mounted concurrent counter-insurgency and pacification campaigns. At that time, many who sought refuge in the mountains returned. The death of the leader of the armed guerillas, Deok-gu Lee, in June of 1949 virtually put an end to this guerillas’ group.

작가 강요배
Artist Yo-bae Kang

제주출생으로 서울대와 동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고 ‘현실과 발언’ 동인 활동을 통해 역사와 민중의 삶을 그려내었다. 4.3의 역사적 의미를 담아낸 50점의 제주민중항쟁사 <동백꽃 지다> 전시를 1992년 가졌고, 그 이후로 현재까지 관심을 가지고 작업해오고 있다. 1992년 이후 제주에 정착해 제주의 자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해나가고 있으며, 10여회의 개인전과 수많은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예술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현재 민족미술인협회 회장으로서 예술단체의 지도자 역할로도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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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rn in Jeju, Yo-bae Kang majored in painting and completed a Masters Program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He depicted popular life and history through joining the group "Reality and Voice."In 1992, he exhibited his paintings on the history of the Jeju people's resistance: "The Camellia Has Fallen". This exhibition consisted of 50 pieces conveying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Jeju April 3rd incident.  Kang continues to pursue his work in this area. Since settling down in Jeju in 1992, he has continuously undertaken his work with a great interest in the natural environment of Jeju. In addition to participation in a number of group exhibitions, he has had 10 solo shows. Not only as an artist but also as the chairman of the Korean People's Artists Association, Kang has made a great contribution to Korean 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