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03-05.16 아트스페이스⋅씨 개관 초대전 『강요배-땅에 스미다』

아트스페이스⋅씨 개관 초대전
『강요배-땅에 스미다』

2006.05.03(수)-05.16(화)

오프닝
2006.05.03(수) 18:30

작가와의 대화
2006.05.04(목) 19:00
대담: 임정희(미술평론가)

※ 전시기간 중 작가 관련 영상 자료 상영
TV문화지대 제주(2005.02.24. KBS제주) “화가 강요배”



“이 맵찬 바람 속의 풍경들, 그리고 한 차례 바람이 지나간 후 섬의 중심에 의연히 앉아 있는 새하얀 한라산, 이것이 나에겐 참다운 풍경으로 비친다.” – 강요배, 「마음의 풍경」(2003년 개인전 도록) 중에서



작가 강요배는 「4.3역사화 ‘동백꽃 지다’(1992)」와 1994년「제주의 자연(1994)」전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아왔다. ‘살의 느낌’으로 표현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역사’와 ‘자연’이 ‘대상과의 짙은 교감’을 통해 밀접하게 관련된다.

미술사가 이태호는 그의 그림 형식에 대하여 ‘수묵화의 필묵법다운 형식미를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려온’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미술비평가 임정희는 2001년 작가의 작업에 대하여 ‘「색」과 「경계」라는 측면에서, 그의 색은 밝음과 어두움, 따뜻함과 차가움을 포함하면서 경험적이고 체화적이며 색채가 대상들의 윤곽과 경계를 허물고 실재하는 공간을 해체하고 비운다고 말하였다.

그는 「제주의 자연(1994)」전 이후, 1999「금강산」전, 2003「강요배」전, 2006년「땅에 스민 시간」전으로 3회에 걸쳐 개인전을 가졌다. 작가의 고향인 제주에서 12년 만에 열리는 이 전시에는 ‘제주의 자연’ 전 그 이후인 90년대 말부터 2006년 ‘땅에 스민 시간’ 이후인 최근 작업까지 전시되고 있다.(아트스페이스⋅씨)

[평론] 제주의 바람과 땅과 하늘, 그리고 강요배
| 이태호 李泰浩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박물관장)
※ 『땅에 스미다』(학고재갤러리, 2006) 도록에 수록된 글


1.
강요배는 대단히 감성적인 사람이다.
깡마르고 껑정한 외모에 고집스레 보이는 짙은 눈썹의 강렬한 인상. 아마도 우리시대에 그처럼 날카로우면서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게다. 그런 만큼 강요배는 ‘머리보다 가슴과 몸으로 체득되는 느낌’에 충실한 작가이다. 자신의 화두대로 늘 대상과 짙게 교감하는 ‘살[肉]의 느낌’을 쏟아내 왔다.
1980년대 말부터 제주민중항쟁사 같이 서사적인 연작을 제작할 때나 제주로 작업실을 옮겨 제주의 풍광을 담아낼 때에도 그랬다. 예를 들어 제주민중항쟁사 50폭을 “한 서리고 애달픈 제주의 민요와 동요를 100여곡 끊임없이 반복해서 틀어놓고 그 느낌 속에서 그렸다”는데, 한동안 가락들이 빙빙도는 환청을 겪을 정도였다고 한다.
강요배의 감성에 가득찬 화면은 풍경을 흐르는 바람결이나 소리, 그 대상들의 ‘살 느낌’ 질감처럼 두터운 물감과 생동하는 붓자욱으로 유동친다. 특히 전통화구 먹붓의 일필휘지하는 맛으로 몽롱한 형태를 살려내는, 짙거나 밝은 색 터치의 마무리 감각은 거의 동물적 직관력에 의존한 듯하다.
그리고 때론 격정적이거나 고요하게, 때론 불규칙하거나 고른 리듬을 타고 움직인 붓길은 언제나 강요배의 마음, 곧 심상(心象)을 어렵지 않게 읽게 해 준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고 대중에게 편히 전달되기에, 강요배의 그림은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


2.
40점에 이르는 이번 개인전의 작품들은 최근의 생활을 반영하는 듯, 감정의 변화를 뚜렷이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부드럽거나 경쾌한 느낌의 서정성이 두드러져 있다.
물론 남제주 바닷가의 육각형 바위절벽인 <총석>에 부딪는 포말, 파도가 해변의 벼랑을 치는 소리를 담은 <절울이>, 그리고 해풍에 질기게 자란 <신서란> 등에는 그동안 강요배의 예술 감정을 일깨운 제주의 세찬 바람이 여전하다. 땅에서 자라 땅과 유사색조인 <감자>, <호박들>, <무우>, <누운 당유자> 등 역시 강요배의 예술적 흥을 자극해온 소재이다.
제주말로 분화구를 의미하는 <굼부리>는 산 정상에서 굽어본 거대한 암갈색 땅구덩이를 가득 채운 야심찬 대작이다. 제주의 어느 오름이나 올라가서 느낄 수 있는 벅찬 감동이 밑바닥으로 빨려드는 듯하다. 이들은 모두 강요배가 그동안 섬땅 제주에서 삭힌 자연의 속살이랄 수 있겠다.
이들과 달리, 나무와 잎은 생략하고 미색 배경에 무수히 떨어지는 동백꽃들만으로 채운 <꽃비>는 색다른 감성의 표출이다. <동백꽃잎>은 화면 가득 벌겋다. 마치 노란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조선의 여인을 연상시킨다.
동백꽃은 잘 알다시피 잎이 시들지 않고 활짝 핀 채 나무에서 뚝하니 떨어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강요배는 <동백꽃 지다>를 제주민중항쟁 연작의 전체 제목으로 썼고, 50점 연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49번째 작품으로 그려냈다. 민중항쟁의 처참한 좌절을 상징했던 낙화가 <동백꽃잎>과 <꽃비>에서 밝고 화사함으로 바뀐 것이다.
붉은 피가 흩뿌려진 것 같은 열매의 <팥배나무>에는 그야말로 환희에 들뜬 기분이 가득하다. 빨간 잎에 초록 나무를 대비시켜 더욱 그렇다. <메밀밭-달>은 동녘 하늘에 메밀밭 위로 막 떠오른 보름달을 담은 것이다. 휘영청 달빛 아래 희뿌연 메밀꽃 색깔이 빛을 발해 하늘마저 훤하게 물들인 듯, 어두운 밤조차 대낮처럼 느끼게 한다. 잔가지가 많은 팽나무 같은 고목의 <나무-빛>, 암갈색 산기슭에 노랗게 핀 <산국>, 소담하게 흰 꽃이 봉오리를 터트린 <산작약> 등은 의도적으로 빛의 쏟아짐을 표현한 그림들이다. 이전의 강요배 화풍과 거리를 두게 하는 빛의 환영이 돋보인다.
그런 한편 <못-비>는 짧은 터치의 반복으로 전형적인 인상파풍을 구사한 그림이다. 프랑스 화가 모네의 수련 연작과 유사하다. <물색>은 청정하게 맑은 제주 바다의 색변화를 맛보게 한다. 반달 하늘을 배경으로 삼은 <감꽃>의 연두색 새잎과 흰 꽃의 어울림이 싱그럽고, 하얀 낮달의 주변을 감싼 연분홍의 <억새꽃>은 가을향이 따사롭게 다가온다. 감미로움이 펄펄 넘치는 작품들이다.
또한 이번 작품전에서 정교하게 추상화한 작품으로 <알>이 눈길을 끈다. 바닥의 길게 늘어진 선은 여체를 연상시키고, 그 사이에서 쏙 빠진 하얀 알을 그린 그림이다. 알의 신화적 의미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미색 하늘에 뜬 흰 달 같기도 하다. 하늘 배경을 정교하게 밑칠한 위에 일렁거리는 붓자욱의 리듬감이 정말 감칠 맛 나면서 정갈하다. 봄 들녘을 너울거리는 아지랑이의 느낌이다.
<북천>은 제주에서 유난히 푸른 가을의 북쪽 하늘을 담은 그림이다. 옅은 바탕색에서 짙은 색으로 블루톤 채색을 북돋우면서 화면 가득 소용돌이로 표현한 추상화이다. 어딘지 제주의 푸른 바다가 그렇게 하늘에 비친 것 같기도 하다. <알>이나 <북천>의 일정한 붓길 리듬은 투박한 마티에르의 바탕을 즐겼던 강요배의 기존 화풍에서 크게 달라진 감성표현이다.


3.
강요배는 감성적이면서도 퍽이나 생각이 깊은 사람이다.
그의 논리가 선명한 주장은 화가의 길에 접어들면서부터 ‘생각 – 느낌 – 상상(꿈) – 도(道)’ 로 대상과의 관계와 창작과정을 자신의 화론(畵論)으로 정립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생각’ 을 일찍부터 앞세웠고, 그 생각은 지나치게 감성에 의존하기 쉬운 예술가의 균형자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된다.
예민한 직관과 풍부한 감성의 표출이 강요배 예술의 큰 울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 곧 설화적이거나 때론 신비주의적이기도 한 상상력과 적절한 화면구성이나 형상화의 조형의지는 강요배 예술의 형식적 요체이자 강점일 것이다.
먼저 강요배의 생각이 논리정연한 것은 앞서 거론한 제주 4․3 민중항쟁의 연작을 50점의 대서사시로 구상하는 일부터 그 하나하나의 회화적 완성까지 잘 드러나 있다. 각 장면을 추상화하고 형상화해낸 상상의 힘이 압권이었다. 특히 ‘동백꽃 지다 그 이후’ 흙이 된 민중들의 두상들 사이에 던져진 호박꽃을 담은 <흙노래>, 흙에 뒤섞인 민중들의 살덩이에 떨어진 동백꽃을 담은 <살노래>, 깜깜한 동굴 속의 두개골이 입을 쫙 벌린 모습의 <뼈노래>가 그러하였다.
다음 강요배의 생각은 화면 구성이나 필치, 곧 회화적 형식에서 우리 전통문화와의 교감을 이룬다. 서양 그림의 화구를 사용하면서도 늘 수묵화의 필묵법다운 형식미를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려온 것이다. 이는 강요배 회화의 커다란 장점이다. 한국인의 진정한 ‘한국화’ 이기 위한 의미 있는 방향타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짙은 선묘로 단숨에 그린 1994년 작 <세한송(歲寒松)> 같은 작품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가 제주도 유배시절에 그린 <세한도(歲寒圖)>를 연상시켜 줄 만큼, 전통적인 문인화가의 수묵화법에 근사하다. 이후 수선화, 소나무, 매화, 산목련 등의 그림에서도 여백을 살린 공간처리나 먹붓의 맛을 살린 필흥(筆興)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번 작품전에서 강요배의 생각과 느낌의 변모는 꽃과 나무 그림들에도 잘 드러난다.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이 선택한 화재이다. 앞 시기의 것들보다 전통 화조화풍이나 수묵 문인화풍의 냄새가 한결 짙다.
가을의 벽오동을 그린 <오동잎>의 수탉은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1897)의 필의(筆意)가 베어 있다. 멀구슬나무에 날아와 앉은 직박구리새 한 쌍을 담은 <멀구슬새>는 전통적인 화조화풍과 흡사한 구성이다. 잎은 지고 노란 열매들만 메달린 고목나무의 배치와 여백에는 전통화풍을 따르려는 강요배의 생각이 잘 담겨 있다.
눈밭의 <감나무>, 회색 하늘의 <겨울 당유자>, 바람에 쏠린 <수선화 밭> 등도 전통 수묵화의 구성법이나 필법을 개성적으로 재해석한 느낌을 준다. <풍송>은 새잎이 돋는 봄 소나무에 한 쌍의 제비가 날아온 소재이다. 사선구도의 화면에 반복한 사선 터치는 역시 강요배식 바람표현이다.
화면을 횅하게 비운 <허공과 나무>는 문인화격에 가장 근사하다. 두세 개의 마른 고염이 달린 잔가지와 나무둥치를 화면의 가장자리로 내리치고 잔뜩 여백을 남겨 선미(禪味)가 가득하다. <홍매> 역시 그 소재가 갖는 의미와 함께 문인화풍으로 소화한 그림이다. 복잡한 잔가지의 리듬감과 맑은 분홍색 꽃들이 살포시 핀 봄내음을 풍긴다. 작업실 마당에 연못을 파고 심었다는 <백련>은 물기를 듬뿍 실은 붓의 흐름이 수묵화 느낌 그대로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갈게 있다. 근래 강요배가 즐겨 쓰는 아크릴릭 칼라 물감의 문제이다. 강요배의 의견대로 수성안료인 아크릴릭이 빨리 건조해 유화보다 우리 전통 수묵화풍과 친연성이 있고, 윤기가 적어 자신의 감성과 맞는 장점이 충분히 있다. 그러면서도 그림의 깊이와 섬세한 맛은 오일칼라인 유화에 못미치는 점도 없지 않다. 따라서 그림의 대상에 맞추어 그 재질감과 감정에 합당하는가도 신중히 따져 안료를 선택하면 좋겠다. 유화작품이 많았던 1994년 ‘제주의 자연’ 전의 작품들을 다시 뒤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4.
이번 작품들에서 강요배의 유난한 감성과 생각은 하늘에 경도된 듯하다. 앞서 살펴본 제주의 바람과 땅 그림보다 주제와 표현방식에서 색다른 색채가 가장 뚜렷하기 때문이다. 강요배가 본격적으로 별과 달의 광채에 관심을 쏟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강요배는 그동안에도 제주의 밤하늘에 빛나는 달과 별을 간혹 그려왔다. 산 언덕 위로 뜬 노란 보름달 <달>(1993), 개울에도 비친 일그러진 달 <월대>(1994) 등 선월(禪月)의 그림이나 <미리내>(2001) 같이 하늘에 흐르는 은하수와 별자리 그림이 떠오른다.
이번의 <월광해>는 막 떠오른 보름달 아래 흰 파도의 바다와 흰 구름의 하늘이 하나인 섬 풍경화이다. 섬과 달을 좌우 대칭으로 엄정하게 배치했음에도, 월광을 토해내듯 거친 붓자욱이 일품이다. 제주도 동쪽 함덕의 서우봉은 오히려 일출로 유명한 장소인데, 강요배의 감성은 역시 월출의 밤에 닿아 있는 모양이다.
한라산 정상 너른 고원에서 만난 밤풍경 <고원의 달밤>에는 보름달에 별들까지 가세하여 하늘세상이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제주의 투명하고 짙푸른 하늘에 빛나는 <별흐름> 과 <별-길>도 그렇다. 별들은 얼마나 그 찬연한 빛을 발하는지 주먹만한 흰색 덩어리들이 팍팍 튀쳐 오르게 표현했다. 이들은 별밤의 고요를 쫓는 강요배의 침묵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강요배의 전시작품들을 훑어보니,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일정한 형상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이 눈길을 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이다. <용폭(龍瀑)>, <주운(朱雲)>, <고원의 가을> 등에 그러한 모습이 잘 나타난다.
<용폭>은 폭포의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용을 화면 가득 담은 것이다. 너른 바위 절벽을 타고 폭포수가 물방울들을 터트리며 쏟아진다. 이를 역행하여 비상하는 용은 강요배의 빠르고 흰 붓질에 의해 역동적인 형상을 보여준다.
<주운>은 해질녘 구름 하늘을 그린 것이다. 붉게 물든 하늘에는 흰 구름 조각들의 흐름에 따라 양 날개를 펄럭이는 주작(朱雀)의 형상이 떠오르도록 표현되어 있다. 오히려 움직이는 구름보다 주작 형상의 하늘이 요동을 치는 듯하다. 청룡과 주작, 두 상상의 동물은 방위신(方位神)으로, 잘 알다시피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四神圖)에서 따온 것이다.
한편 <고원의 가을>의 맑은 하늘에 피어오른 흰 구름은 얼핏 백호를 닮아 있다. 너른 붓으로 단숨에 뭉갠 붓질이 백호의 힘찬 형상미를 보여준다. 잔가지가 복잡하게 얽힌 <나무-빛>은 뱀이 거북이를 잔뜩 꼬아 감은 현무도가 떠오른다. 달과 별이 한 하늘에 빛나는 <고원의 달밤>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정화를 연상케 한다.
나는 이들 사신도 형상을 다시 그려보면서 너무도 반가웠다. 1998년 8월 그와 함께 평양의 고구려 고분벽화와 금강산을 다녀온 적이 있어서 더욱 그랬다. 둘이서 강서대묘와 강서중묘, 덕흥리벽화고분에 들어가 그 벽화들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며 흥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용폭>의 청룡과 <고원의 가을>의 백호는 강서대묘, <주운>의 주작은 강서중묘의 벽화를 닮은 편이다. <고원의 달밤>의 별과 달은 덕흥리벽화고분의 천정화와 연계해도 좋을 것 같다. 그때 고분 속의 감명을 이렇게 형상화하다니 “역시 강요배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인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 가운데 2점은 제주 풍광이 아니다. 그 중 <만폭동Ⅱ>는 1998년 여름 내금강의 여행을 표출한 그림이다. 금강산을 다녀오고 난 다음해 개인전 때 내놓은 <만폭동>은 조선 후기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소품 <만폭동도>를 패러디한 것처럼 너럭바위 위에 두 인물을 그려 넣었다. 붉은 티셔츠에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필자이고, 물길을 내려다 보는 사람이 강요배 자신이었던 모양이다.
여행 직후에 그린 1999년의 <만폭동>과 그 6년 뒤인 2005년의 <만폭동Ⅱ>는 강요배 화풍의 변화를 뚜렷이 읽게 해준다. <만폭동>이 한 여름 짙푸른 분위기로 갈색과 녹색의 선들이 세찼던데 비해, <만폭동Ⅱ>는 겨울이나 초봄 풍경이라 느껴질 정도로 희뿌옇다. 그가 “꿈에 두고 온 듯 아득하기만 하다”라고 했듯이, <만폭동Ⅱ>에 몽환적인 터치로 몽유금강을 담으려한 듯하다.
<바닷가 아이들>은 강요배로는 별격으로 발리섬을 여행했을 때의 일화를 담은 대작이다. 바닷가에서 강요배가 한 아이의 얼굴을 그리자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그 정황을 담은 사진을 보고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캔버스의 왼편 하단에는 그때 아이의 스케치를 아크릴로 덮어 마치 오브제처럼 붙여 놓았다. 사진 속에 그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렇게 처리했다고 한다. 제주민중항쟁사 연작을 그릴 무렵의 인물화 솜씨를 오랜만에 보여주는 그림이면서, 강요배의 드물게 보는 자화상이 포함되어 있어 흥미롭다.